(9)“웰다잉의 핵심은 내 삶의 마무리를 내가 결정하는 것”

진행 | 윤영호 서울대 교수·정리 | 배문규 기자

대담 - ‘죽음’을 말하자

한국 사회 웰다잉 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한 윤영호 서울대 교수, 최철주 전 중앙일보 고문, 더불어민주당 원혜영 의원,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오른쪽부터)이 지난 6일 경향신문사에서 열린 ‘웰다잉 대담’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해마다 10월 둘째주 토요일은 ‘호스피스의날’이다. 이상훈 선임기자

한국 사회 웰다잉 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한 윤영호 서울대 교수, 최철주 전 중앙일보 고문, 더불어민주당 원혜영 의원,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오른쪽부터)이 지난 6일 경향신문사에서 열린 ‘웰다잉 대담’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해마다 10월 둘째주 토요일은 ‘호스피스의날’이다. 이상훈 선임기자

내 마지막을 결정할 권리

나이가 들면 누구나 웰빙을 넘어 웰다잉을 말한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스스로 웰다잉을 준비하고 결정하고자 하는 국민적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간병살인, 동반자살 등 불행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보도되고 있다. 스위스 의사조력자살 지원단체에 한국인 107명이 등록돼 있으며, 안락사에 국민 80%가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민감한 문제이긴 하지만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조력자살 제도화 가능성도 중요한 이슈다.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2017년 8월부터 호스피스가, 2018년 2월부터는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작됐다. 지난달까지 20세 성인의 0.8%만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고 연명의료중단 등의 결정을 이행해 사망한 사람들의 1.2%에 해당하는 725명만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따랐다. 호스피스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호스피스와 연명의료의 ‘협의의 웰다잉’을 넘어 ‘광의의 웰다잉’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10월 둘째주 토요일은 법정기념일인 ‘호스피스의날’이다. 연명의료결정법의 의의와 한계, 그리고 한국 웰다잉의 현재를 진단하고 추진 과제들을 점검할 때다. 연명의료결정법 통과 당시 국회에서 ‘웰다잉문화조성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을 이끌고 사단법인 ‘웰다잉시민운동’(이사장 차흥봉) 출범에도 주역을 담당한 더불어민주당 원혜영 의원, 2009년 초선 의원 시절부터 웰다잉 관련 법안을 발의했고 연명의료결정법의 한 축인 호스피스법을 발의했던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 그리고 강연과 출판으로 웰다잉을 전파하고 있는 최철주 전 중앙일보 고문과 지난 6일 경향신문사에서 웰다잉 대담을 했다.

윤영호 서울대 교수 = 연명의료결정제도 시행에 이르기까지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김세연 의원 = 2005년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의료 현장에서 의료진이 내몰리는 법적 압박 때문에 작별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떠나보낸 경험이 있다. 국회에 들어온 지 얼마 안된 때였는데 바로잡아야 한다는 결심을 했다.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불러일으킨 ‘보라매병원 사건’이나 ‘김할머니 사건’ 등에서 보듯, 마지막에 응급조치를 하지 않아도 살인방조죄로 처벌받는 문제를 고치지 않으면 많은 가족들이 작별인사도 못하고 헤어지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 ‘존엄사법’으로 이름 붙이려고 했더니 생명윤리에 반한다거나 안락사 촉진 우려가 있을 수 있다고 해서 ‘자연사법’으로 제안했다. 그 뒤에도 고민하다가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권리에 관한 법률안’이라고 했다. 처음 발의한 18대 국회 때는 논의 자체가 쉽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금기시하던 분위기가 몇년 사이 변화가 생기면서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되기에 이르렀다.

원혜영 의원 = 이전에 존엄사 관련 논란은 들어봤지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구체적 고민이나 노력은 부족했다. 우연히 윤 교수님이 발제한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문제에 대해 얘기를 듣고 관심을 갖게 됐다. 그 과정에서 회의적 시각이 크고 이견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김세연 의원이 이전부터 고민해 온 사실을 알게 되면서 2015년 국회에서 34명의 여야 의원이 참여한 ‘웰다잉문화조성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을 만들고, 시민사회의 힘을 함께 모아서 현재에 이르게 됐다.

최철주 전 중앙일보 고문 = 2000년대 초반 연명의료나 웰다잉에 대한 얘기가 나오던 즈음 딸이 암투병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 그때 우리가 죽음이라는 것을 너무 모르고, 가족들이 인사도 못하고 떠나보내고, 가족 간 분쟁까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딸이 떠난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아내도 암 투병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 ‘선진국 수준으로 소득은 늘어났는데 왜 죽음에 관해선, 삶에 관한 질은 떨어지는 것일까….’ 시대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저널리스트로서 관심을 가지게 됐다.

윤영호 = 도쿄 특파원도 하셨으니 일본 사정에 대해 잘 아실 것 같다.

최철주 = 일본은 한국을 보며 이해를 못하겠다더라. 자기들은 1970년대부터 모임을 만들고, 시민단체 활동도 활발했는데 입법은 못했다고 한다. 한국은 법으로 만들어낸 문화적 배경이 무엇이냐고 했다. 한국에선 아픈 사람들의 고통이나 죽음의 문제를 제대로 모르다가 어느 순간 깨닫기 시작하고, 언론도 설득에 나서면서 국회 입법까지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사회적 의제를 빨리 잡아서 국민을 위한 법을 만들고 시행하는 진취성이 있는 것 같다.

윤영호 = 하지만 종교계에선 생명존중 경시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장애인들을 그냥 방치된 상태로 죽게 하지 않을까라는 ‘현대판 고려장’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윤리적·종교적 문제를 사회적으로 충분히 협의해 조화롭게 법률을 제정했다는 의미도 큰 것 같다. 이제 법 시행은 햇수로 2년째 접어들었다. 지난 6월에는 정부가 호스피스·연명치료 관련 최초의 법정 계획인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까지 발표했다. 현재 법 취지대로 가고 있다고 보시나.

김세연 = 의료기관들이 호스피스 병동에 대해 고비용 구조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정부에서 호스피스 인프라 확충에 대한 큰 틀의 계획을 수립·시행하고 있지만, 아직 내실있게 정착되지는 못한 듯하다. 수가체계를 다시 조정·보완하든, 호스피스에 대한 정책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든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게 힘을 모아야 할 것 같다.

[윤영호의 웰다잉 이야기](9)“웰다잉의 핵심은 내 삶의 마무리를 내가 결정하는 것”

윤영호 = 병원에 중환자실이나 응급실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은 국민 생명과 관련된 부분에서 공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죽음과 관련된 부분도 공적 재원을 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가 수가체계만이 아니라 인프라 구축에 대한 예산을 지원하고, 호스피스도 병원이 해야 할 기능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원혜영 = 연명의료 관련 문제를 통합적으로 다룰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 정부에서 연명의료법 자기결정권의 정확한 취지나 규정을 홍보·상담하는 통합적인 기구가 있어야 하는데 없다. 법적으로 확보된 권리에 대해 시민들이 인식, 실천할 수 있도록 조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최철주 = 호스피스가 수지가 맞지 않는 의료행위라는 인식이 있다. 정부 예산 우선순위에서도 뒤로 처지는 것 같다. 국민들 삶의 질만 높이는 것을 생각해서 그런 것 아닐까. 죽음의 질을 높이는 것을 편리의 문제로 보거나, 뒤로 미뤄도 된다고 생각한 탓인 것 같다. 죽음의 질은 결국 삶의 질과 똑같은, 가치관의 문제다. 우선순위로 예산을 투여할 필요가 있다.

윤영호 = 삶의 질도 중요하지만, 죽음의 질도 중요하다. 우리 사회는 어떤 죽음이 좋은 죽음인가, 개별적 요구는 있어도 공론화와 합의는 취약하다. 좋은 죽음은 무엇이라고 보시나.

최철주 =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최하의 죽음의 문제를 안고 있다. 자살 외에도 투병 환자에 대한 간병과 보호도 많이 떨어진다. 연명의료결정법이 통과됐지만, 이러한 제도를 충분히 이용할 만큼 가족 간 대화가 이뤄지지 못한다. 투병하는 사람이 ‘연명의료를 하지 않겠다’고 부탁하거나 의사를 밝히질 못한다. 가족들이 합의해서 의향서를 써버리는 게 태반이다.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문화를 어떻게 만들지 사회적 고민이 필요하다.

윤영호 = 데이터로 말씀드리면, 올해 8월까지 사전연명서 작성이 33만7659건으로 30만건을 넘어섰다. 연명의료 결정에 의한 사망은 6만2546명으로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그럼에도 연명의료 결정을 스스로 한 경우는 3분의 1 정도이고, 나머지 3분의 2는 가족 합의나 의사를 대신 전달한 경우였다. 33만여명이 사전에 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는데 그 뜻에 따라 돌아가신 경우는 725명에 불과했다. 거의 기능을 못하는 듯하다.

원혜영 = 미리 건강한 상태에서 맑은 정신으로 무의미한 연명의료에 대해 스스로 결정하는 생활문화가 정착되는 것이 중요하다. 통계에서 보듯 아직 연명의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법적으로 보장돼 있다는 걸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폭넓게 이해가 되면 우리 사회의 어려움, 갈등도 해소할 수 있고, 무엇보다 자기 삶의 마무리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삶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게 될 것 같다. 우리 사회 삶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선 당사자 한 분 한 분의 삶의 품격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윤영호 = 일반 대중들은 평소에 대화를 나누거나 관심을 갖기 쉽지 않은 주제다.

최철주 = 선진국은 1인당 GDP 3만달러, 5만달러가 되면서 죽음을 인식한다. 죽음을 자연스럽게 가르친다. 가령 탁자 위 꽃을 두고 10여일 지나면 죽는다, 이것이 꽃의 운명이다. 강아지나 고양이도 길어야 15년이면 세상을 떠난다, 그런 게 동물의 삶이다. 사람도 노인이 되고 때로는 재해에 의해 떠날 수 있다, 그러니 열심히 놀고 공부하고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이런 가르침이 한국에는 없다. 죽음의 문제가 생활에 없다보니 남의 일이 된다. 그래서 대화가 안된다. 투병생활을 하는 사람도 언젠가 떠날 것을 생각해서 사랑한다거나 남겨야 할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더 투병을 하지, 어디 가서 장기이식을 받지 그런 생각하다가 고생만 하고 떠난다.

윤영호 = 연명의료법의 중요한 부분이 우리 시대의 자기결정권이 죽음까지 확대됐다는 것이라고 본다. 죽음 문제는 보건복지부 소관이지만, 교육도 중요하다. 학교교육이나 평생교육에서 죽음에 대해 체계적으로 다룬다면 어떨까 싶다. 간병인의 경우 여성이 대부분이니 여성가족부와도 연관이 있다. 범부처적으로 웰다잉 정책을 확대시킬 수는 없을까.

김세연 = 의무교육에 반드시 생사관, 인생관에 대한 부분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선 유교적 전통에 따라 이름을 빨간색으로 쓰면 안된다든지, 죽음에 관한 부분을 불경시하거나 논의가 금기시되는 것 같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선 학교에서부터 교육 과정에 포함시키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의무교육으로 받지 못한 세대를 위해선 평생교육 차원에서 입관·장례식 체험, 유서 쓰기 등 캠페인을 강화해 실제로 죽음이 더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도록 할 수 있을 것 같다.

원혜영 = 당장 제도교육에 반영하는 것은 쉽지 않다. 초기에 집중해서 성과 낼 수 있는 부분이 평생교육이다. 아무래도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중장년층 대상으로 가능할 것 같다. 우리나라는 노인 조직이 잘되어있고, 동네마다 경로당이 있다. 그러한 경로로 웰다잉에 대한 단순하고도 올바른 이해를 사례 중심으로 소개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자연스럽게 이별할 권리

[윤영호의 웰다잉 이야기](9)“웰다잉의 핵심은 내 삶의 마무리를 내가 결정하는 것”

최철주 = 연명의료나 호스피스 관련 자료가 너무 어렵다는 게 문제다. 관료적 시각으로 만들지 말고, 중학생 수준 학력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 위주 자료를 만들 수는 없을까. 경로당에서 너무 딱딱하거나 의료적 용어만 나열하면 앉아있던 노인들이 다 나가버린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하면 좋겠다.

윤영호 = 대만에선 애니메이션으로 죽음의 메시지를 초등학생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사실 연명의료나 호스피스는 웰다잉의 기본이다. 사전연명결정은 품위있는 죽음을 위한 준비, 호스피스는 인프라로 볼 수 있다. 그 외에 장기이식 결정, 유언 작성, 장례식 준비, 유산기부 등 의사 결정할 부분이 많은데 광의의 웰다잉 측면에서 제도적으로 정착돼 있지 않다.

원혜영 = 웰다잉의 핵심은 삶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내가 결정할 일이 많다는 것이다. 생활문화 확산을 위해 참고할 만한 부분이 화장문화다. 20년 전만 해도 화장할지 안 할지 물어볼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금기시됐다. 지금은 화장을 경제적인 문제나 고인에 대한 태도와 묶어서 생각하지 않는다. 20년 만에 빠른 변화가 진행됐다. 웰다잉의 경우 연명의료 자기결정권, 재산 정리, 유언장 작성, 치매와 관련한 성년후견제도, 장기기증 문제, 장묘, 장례와 관련한 비싼 수의나 관 등 각종 논의가 초보적 단계다. 개별적 사안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삶의 마무리를 어떻게 할지 이해시키는 데 노력이 집중되어야 할 것 같다.

최철주 = 일본에선 죽음을 준비하는 활동을 ‘종활(終活)’이라고 한다. 지방 곳곳에서 언론사 주최로 박람회를 열고 유언 쓰기, 화장장묘, 유언 처리 등을 도와준다. 은행에서 오고, 변호사도 나오고, 장묘 전문가까지 참여한다. 한국에선 ‘죽음 박람회’라고 하면 파리만 날릴 것 같다.

윤영호 = 한국은 상조회가 있으니 거기서부터 시작해 가는 것은 어떨까. 어떻게 문화를 만들어나갈 것인지가 고민할 문제다.

원혜영 = 웰다잉에 관심을 가지면서 새롭게 발견한 사실이 유언장을 얼마나 쓰는지 통계조차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 만날 때마다 유언장 쓰냐고 물어보면 노년층에서도 몇 사람 못 봤다. 일반 시민들은 재산이 많지 않아 그런가 싶어서 자산가들한테도 물어봤다.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문화적 장벽이 있는 것 같다. 자기 삶을 마무리하는 과정에 많은 일이 있고, 그것을 준비하는 게 내 삶의 품위를 높이고, 사회 통합과 갈등 해소에도 중요하다는 걸 알릴 필요성이 있다.

윤영호 = 유언장만이 아니라 사회 공적인 기능에 쓰이게 하는 유산기부 문제도 있다. 국민들에게 유산기부 의사를 물어보니 54% 정도가 사회에 기부할 의향이 있었다. 사회적 고독사나 독거노인 부양에 쓰이면 좋겠다는 의견이 절반에 달했다. 유산기부도 제도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김세연 = 한국 사회가 안전망이 갖춰져 있었다면 막을 수 있는 비극들이 있다. 간병 살인이나 최근 탈북민 모자 아사 문제 등이 그렇다.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독점적 지위의 기업체를 운영하던 트러스트 기업가들이 대학 설립 등 기부를 많이 하지 않았나. 유산기부가 큰 규모가 아니더라도 사회적 가치가 있는 데 쓰일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최철주 = 기부 제도에 대한 고민들이 있다. 중소기업 오너들과 웰다잉 간담회를 하다보니 재산 일부를 사회에 기부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상속재산 유류분 반환청구 소송에 휘말린 주변 사람들을 보며 고민스럽다고 한다. 이를테면 능력에 따라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더 준다든지 하고 싶은데 유류분 반환청구 소송에 걸려서 집안이 엉망이 될 것 같다고 한다. 현재는 상속세를 떼고 배우자에게 좀 더 주는 것으로 끝나는데, 기부 분배에 대해 폭넓게 인정하는 제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또 기부하고 나서 제대로 쓰이는지 투명성에 대한 의구심도 있더라.

원혜영 = 개정안을 내려고 한다. 현재는 고인이 법적 상속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다 준다고 했어도 유족들에게 50%는 보장하는 것인데, 이를 3분의 1로 줄이자는 것이다. 옛날에는 대가족 제도가 사회안전망 역할을 했지만, 이젠 자식들도 독립해서 생활하고 자식이 없으면 다른 혈족에게도 나눠줄 수 있다. 현재 법은 오늘날 가족 제도와 부합이 안되는 것 같다. 유산을 나눠주는 친족 범위도 좁히는 쪽으로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적 문제를 떠나서 현재도 가족 몫을 제외한 50%는 얼마든지 기부할 수 있다. 영국에서 ‘레거시10(Legacy 10·자발적으로 유산 10%를 자선문화사업에 기부하도록 유도하는 캠페인)’이 확산한 것처럼 한국에서도 유산기부 활성화가 필요하다.

최철주 = 한국에서도 보통 사람들이 따라 하고 싶은 롤모델이 있으면 좋겠다. 지난해 미국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세상을 떠났을 때 CNN 방송에서 장례식을 생중계해주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원혜영 = 장묘 문화의 경우 SK 최종현 회장 같은 분이 화장을 실천하면서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 LG 구본무 회장도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거부하고, 수목장을 하지 않았나. 그런 사례가 전파력이 클 것 같다.

윤영호 = 마지막으로 어려운 주제이지만, 조력자살(안락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필요한 상황이다. 호주의 데이비드 구달 박사가 (조력자살이 합법인) 스위스에서 의료진 도움으로 생을 마감한 사례가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 2명도 이미 의사 조력자살을 했고, 107명이 조력자살단체 회원으로 가입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분들은 한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사회적 요구가 있을 텐데 준비는 어느 정도 됐을지 궁금하다.

최철주 = 최근 언론 조사에선 조력자살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80%에 달했다. 현재 논의를 몇 단계 건너뛰어서 조력자살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을까. 하지만 소득이 높아지면서 죽음의 질을 고려하다보면 안락사의 필요성이 늘어난다. 강의를 나가보면 젊은 사람들도 안락사를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열심히 일하며 살다가 치료하기 어려운 불치병에 걸리면, 그때는 고통을 끝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2000만원 정도 따로 묶어놨다는 얘기도 한다. 스위스행 비행기값이랑 병원비에 그 정도 든다는 것이다. 조력자살에 대해서도 많은 사회·문화적 논의가 필요하다. 앞으로 10~20년 뒤를 생각하면서 준비해야 한다.

김세연 = 한국 사회의 생명 경시 풍조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생명 중시 관점에서 보면 안락사는 용납될 수 없는 결정이다. 현실 문제는 아니지만 넷플릭스에 <얼터드 카본(변형된 탄소)>이라는 SF드라마 시리즈가 있다. 작품에선 뇌과학이 발달하면서 전기신호로 구성돼 있는 사람의 기억이나 의식의 다운로드·업로드가 가능해지면서 사람 의식을 하나의 회로기판에 담아서 다른 신체에 장착한다. 몸은 바뀌지만, 그 사람의 의식은 있으니 연속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아직까진 상상의 영역이지만 몇십년 내 현실 문제가 될 개연성이 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근본적인 철학적 논의가 깊어져야 할 것 같다. 개인적인 가치관이 정립되고, 사회적 합의가 될 때 조력자살 문제도 명쾌하게 될 것이다.

윤영호 = 한국 사회에서 해결할 방법이 없어서 외국에서 마무리를 하겠다는 분들도 우리 국민이다. 그러한 선택을 수용할 방법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김세연 = 낙태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오면서 뜨거운 사회 이슈가 됐다. 산모 입장에서 어느 정도까지 태아의 생명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하느냐의 문제다. 생을 마감하는 단계에서도 거의 같은 구조의 이슈, 생명과 자기결정권이라는 논의가 부상할 것 같다.

원혜영 = 연명의료에 대한 자기결정 문제도 최근에 법제화돼 겨우 시행됐다. 아직까지도 시민 90%는 그러한 것이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태에선 적극적인 조력자살 문제를 논의하기에 앞서 무의미한 연명의료에 대한 자기결정 문제부터 이야기하며 사회적 논의를 확산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대담 진행 윤영호 교수는

중1 때 누님이 위암으로 돌아가시자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고, 서울대 의대를 졸업했다. 본과 4학년 때 자원봉사를 하면서 호스피스를 알게 되어 호스피스를 전공으로 택해 가정의학과 수련을 받고 전문의를 마쳤다. 2000년 국립암센터 설립 초기부터 참여해 삶의질향상연구과장, 기획조정실장 등을 역임했다. 2011년 서울대 의대 교수로 옮겼으며 건강사회정책실장, 연구부학장,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을 역임했다. 최근 설립된 웰다잉시민운동 기획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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