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는 중국산, 화장로는 일본산?” 장례문화 일제시대 ‘만들어진 전통’

정용인 기자
오늘날 한국의 장례및 장묘문화는 대부분 일제강점기 이후에 발명된 전통이다. 사진은 한 사회명사의 장례식장에서 추모객이 조문하는 모습 | 경향자료사진

오늘날 한국의 장례및 장묘문화는 대부분 일제강점기 이후에 발명된 전통이다. 사진은 한 사회명사의 장례식장에서 추모객이 조문하는 모습 | 경향자료사진

“중국산이 제일 판을 치는 것이 수의나 관(棺)재, 목재입니다. 오동나무관은 거의 중국산입니다. 심지어 무덤에 들어가는 돌도 95% 중국산이에요. 중국 칭다오에 가면 한국으로 실어가기 위한 석재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석재로 가족 납골묘를 만들어 일본에 많이 수출했어요. 그랬던 우리나라가 국내 인건비가 비싸니까 중국산을 갖다가 깎아 설치하는 세태가 됐습니다. 무덤도 ‘메이드인 차이나’가 된 거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박태호 전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겸임교수의 말이다. 그는 한국 장례문화 변천사의 산증인이다.

한국의 장례문화는 드라마틱하게 변했다. 그것도 최근 10~20년 사이에.

가장 극적인 변화는 토장(土葬)이 급격히 쇠락하고 화장이 대폭 늘었다는 것이다.

봉분을 만들어 매장하더라도 화장한 뒤 유골단지를 묻는 식으로 바뀌었다.

2017년 공식통계에 따르면 화장비율은 84.2%였다. 지난해에는 85%, 올해엔 9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시 장묘담당 공무원을 10여년간 했던 박태호 교수는 말한다.

“1991년 2월 1일자로 제가 장례 관련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화장비율은 10%대였어요.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화장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았습니다. 불자(佛者)라든지, 부모보다 먼저 죽는 악상(惡喪), 아니면 익사 같은 사고사, 전염성 질환자 시신 소각 등 비정상적인 경우에만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죠.”

■ 일제시대 급격히 달라진 장례문화

납골당 문화도 최근에서야 생겨났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화장하면 90%는 뼛가루를 산이나 강에 뿌렸다.

매장에서 화장으로 장례문화가 바뀐 것은 생활양식 변화 때문이다.

전통 농경문화에서는 한 곳에 정주하면서 농사를 지으며 틈틈이 조상묘를 돌보는 문화였다.

토분 관리는 쉽지 않다. 비바람에 잘 씻기고 자주 벌초를 해줘야 한다. 관리하지 않으면 유실된다.

박 교수는 한국에서 ‘화장에 대한 금기’가 급속도로 무너진 전환시기가 있다고 말한다.

1998년 여름 2~3개월 동안 벌어진 몇몇 사건이 계기가 됐다.

“그해 8월과 9월에 서울에 폭우가 내렸습니다. 서울 북쪽 공원묘지 전체가 쑥대밭이 되어버린 겁니다. 인천 앞바다까지 관이 흘러내려가 둥둥 떠 있기도 했고….”

두 번째는 비슷한 시기 “SK 최종현 회장이 자신이 죽으면 화장으로 해달라”고 한 유언이 있었다.

그 뒤 사회지도층 인사들을 중심으로 장묘문화 개선운동이 일어났다. 박 교수도 이 시민운동에 참여했다.

“화장-납골묘가 대세가 된 데엔 농경문화를 급격히 대체한 도시산업문화의 탓도 있지만 산아제한정책 이후 핵가족화가 원인이기도 합니다. 대가족이 아니라 단세대 가족이니 묘를 관리할 후손이 없잖아요. 결국 찾아뵙기 쉬운 납골묘가 자연스럽게 대안이 될 수밖에 없죠.”

전통을 강조하지만 사실 한국의 전통장례문화 자체가 중국에서 넘어와 변용된 것이다.

고려말 사대부들이 도입한 <주자가례>를 한국식으로 재구성한 것이 <사례편람>이다. 1900년대 들어와 <사례편람>의 한자에 토를 달아 인쇄한 책이 널리 퍼지는데, 오늘날 한국 장례문화의 큰 골격은 이때 만들어졌다.

김시덕 역사박물관 연구기획과장(학예연구관)은 오늘날 전통처럼 인식하고 있는 ‘삼베 수의’ 역시 일제시대 일제에 의해 강요돼 ‘발명된 전통’이라고 말한다.

“<사례편람> 이후 편찬된 <가례집람> 같은 책들에는 수의의 종류가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책들엔 바지저고리, 도포, 버선 같은 ‘갖은 수의’의 재질은 비단이거나 적어도 명주로 만들게 되어 있습니다.”

잠업은 조선시대에도 없지는 않았지만 일제시대에 크게 성행했다.

일제는 개량 뽕나무를 보급했고, 거기에서 생산된 누에나 실을 다시 조선총독부가 매입했다.

미국 등 외국에 수출하고 전쟁물자를 충당하기 위해서였다.

“뼈빠지게 잠업농사를 지어도 다 가져가니 농민들 입장에서는 남는 것이 없었어요. 그래서 있는 집에서는 몰래 고치를 감춰놨다가 윤년·윤달에 맞춰 부모님 수의를 명주로 짜서 보관했습니다. 지금도 일반가정에서는 할머니 장롱 위의 허름한 박스 같은 것을 꺼내보면 당시 몰래 만들어 보관하던 명주 수의가 나오기도 합니다.”

일제는 1912년부터 의례나 죽음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시작은 그해 제정된 ‘묘지화장장취채규칙’이라는 법령이다. 화장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한편, 개인묘지를 못쓰고 공동묘지를 조성하게 하는 것이다. 김 과장은 말한다.

“위생문제 같은 것 때문으로도 설명할 수 있지만 실은 일본 거류민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일본도 당시는 화장이 많지 않았는데 조선에 나와 죽으면 매장해서 묘지를 쓰지 않으려 했거든요. 그 일본사람들을 위해서 조선에서 화장을 합법화시킨 것인데, 조선이 갖고 있던 매장 전통을 의도적으로 단절시키는 것이 내적인 목표였죠. 여기에 1934년이 되면서 ‘의례준칙’을 만들어 명주나 비단으로 만든 비싼 수의를 쓰지 못하게 아예 못을 박아버린 겁니다.”

일제가 대신 강제한 것이 오늘날 우리가 전통으로 알고 있는 삼베 수의다. 비단이나 명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싼 대체재로 인식되었던 삼베 수의는 한국에서 대마 재배 등이 제한되면서 1990년대 초부터 급격히 비싸진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것이 중국산 저가 삼베 수의다. 오늘날 장례식장에서 판매되는 삼베 수의의 99%는 중국산이다.

■ 일제 화장로 급격한 확산 까닭은

박 교수는 화장장의 확산과 함께 다시 일본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는 화장로 문제도 제기했다.

“화장문화가 일제시대에 도입된 것이긴 하지만 그 이후 수십 년간 정립된 국내 기술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고급화 이미지를 가지고 2000년대 들어 새로 건립된 화장장에 일제가 다시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실제 2000년대 초반 충남 홍성군 이전 화장장 화장로 8기를 시작으로 일제 화장로가 잠식해왔다.

2001년 이래 현재까지 건립된 화장장의 화장로 설치현황을 보면 전체 26곳 163개 화장로 가운데 75개가 한국에 진출한 2~3개의 일본 기업이 설치한 것이다. 단시일 내에 전체 46%를 장악하게 된 것이다.

화장로의 수명은 보통 5~10년이다. 예를 들어 2009년 신설된 세종시 화장로는 10개가 모두 일제 화장로였는데 곧 교체주기가 다가온다.

굳이 기술 차이가 없다면 일본 회사 제품을 고집할 이유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 박 교수의 주장이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임종을 집에서 맞는 것이 관례였다.

예전부터 ‘고종명(考終命)’, 즉 집에서 편안히 죽는 것을 ‘다섯 가지 복’ 중 하나로 봤기 때문이다.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는 문화가 한국 사회에서 보편화된 것 역시 1990년대 중반 이후다. 심지어 어깨에 차는 삼베 완장 등이 나온 것은 2000년대 초엽이다. 채 20년도 안 된 새로운 장례문화인 셈이다. 김시덕 교수는 이렇게 덧붙였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에 대학에 장례학과들이 생기면서 장례업자들, 행정학·경제학·법학을 가르치던 사람들이 와서 깊은 연구나 고민 없이 일제가 강요한 습속을 고래의 전통이라고 가르치게 된 겁니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수의는 생전에 입었던 제일 좋은 옷, 예를 들어 남자는 관복, 여자는 시집올 때 입었던 혼례복을 입혀 묻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특히 2003~2004년부터 수의가 썩지 않은 조선시대 회곽분 묘지가 발굴되기 시작하면서 ‘삼베 수의가 우리 조상의 전통’이라는 주장이 깨졌죠. 장례업자가 삼베 수의 전통을 이야기하면 정신없는 상황에서 초상을 치르는 유족들은 ‘그런가 보다…’ 하면서 무심코 넘어가고 있습니다.”

결국 지금의 전통장례문화는 상술을 위해 ‘발명된 전통’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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