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르면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든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 그것은 결국 노화의 과정이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가 발전하고 평균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Well dying(웰 다잉)'이라는 어휘 아래 죽음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깊어지고 있다.
그것은 어떻게 의미 있는 삶을 살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라는 말로 연결된다.
시간에는 누구나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절대적인 시간 크로노스와 상대적인 시간 카이로스가 있다.
즉 크로노스는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는 시간, 아침에서 저녁으로 봄에서 여름으로 시계의 초침과 함께 흘러가는 시간을 말한다.
이 절대적인 시간은 우주의 모든 것과 맞물려 우리를 늙게 하고 끝내 죽게 한다.
반면 카이로스 시간은 어떤 목적을 가진 사람에게 시간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을 말한다.
의미 없이 흘려보내는 1분과 절박하고 긴박한 상황에서 보내는 1분 그 시간은 분명 차이가 난다.
두 가지 시간은 기억에도 차이가 난다. 시간을 흘려보내는 중에도 기회를 잡고 결단을 내리면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순간에서 영원으로 기억에 존재한다.
이는 공평하게 주어지는 크로노스 시간을 카이로스 기억의 시간으로 만듦을 의미한다.
주어진 시간을 흘러가게 두는 것보다 의미를 부여하여 판단하고 결단을 내리고자 하는 행동이야말로 카이로스 시간을 늘리는 방법이다.
지자일사(知者一死), 우자만사(愚者萬死)라는 말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한번 죽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수도 없이 죽는다는 말이다. 한 번의 죽음은 누구에게나 정해진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다르다.
삶의 의미와 죽음은 반비례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삶의 의미가 클수록 죽음은 가벼워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웰 다잉은 건강수명까지 행복하게 잘 살다가 죽을 준비를 잘 하는 것이다.
죽음을 당한다는 의미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의미로 전환됨을 의미한다.
우리가 죽음을 준비하고 맞이할 때 크로노스의 시간이 아닌 카이로스의 시간을 늘려 삶의 의미를 높이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러므로 죽음이라는 불안과 고통의 중력을 해소 할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이 진정한 웰 다잉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