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내가 살아 있을 때 아름답게 이별하고 싶다…생전 장례식에서

윤영호 | 교수

미리 준비해보는 장례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허례허식 장례·장묘문화 바꿔야
조화 대신에 ‘이웃돕기 쌀’ 기부
고인의 인생을 담은 ‘조문보’도

전국 장례식장 1114개 ‘성업 중’
집 근처에 호스피스 병동 있다면
웰다잉 설문조사 “긍정적” 81.7%


톨스토이 무덤은 마음을 울린다

얼마 전 지인을 만나러 모스크바를 방문한 적이 있다. 모스크바에 가면 꼭 가봐야 할 곳이 톨스토이박물관이다. 그가 모스크바에서 살던 집과 정원을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에는 저작권을 비롯한 모든 소유권을 전부 내려놓고 무소유와 청빈의 삶을 실천했다. 그는 기차여행 중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370㎞가량 떨어진 조그만 시골 역사에서 사망했다. 그가 의식했든 하지 않았든, 하이데거가 말하는 ‘죽음을 향한 존재’로서 죽음을 향한 여행이었다. 지인은 문득 이왕 왔으니 톨스토이의 무덤을 방문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지만 ‘의미 있는 삶,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강의를 할 때마다 톨스토이의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이야기하던 필자로서는 주저함이 없었다. 운전시간만 왕복 6시간이 걸린다는 말에도 3일이라는 짧은 방문기간에 다른 일정을 미루고 가기로 했다. 야스나야 폴랴나에 있는 그의 생가에 도착해 안내인의 설명을 받았다. 마지막에 있을 무덤 안내를 고대했지만 무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어 찾아 나섰다.

우리 일행은 방향 표시판을 보고 오솔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지나가다가 얼핏 뭔가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길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풀로 덮인, 관 크기의 직육면체가 하나 있었다. ‘설마 톨스토이의 무덤?’ 충격적일 것이라는 지인의 말이 생각나지 않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주변에 아무런 묘비나 표시판도 없었다. 뒤따라온 러시아인에게 물어보았지만 그들도 몰랐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생전에 아무것도 남기지 말고 장례식도 없이 묻어달라고 했던 그의 유언에 따라 톨스토이는 소박하게 오솔길 옆에 묘비 하나 없이 관 모양의 무덤에 안치되어 있었다. 한때 그의 작품세계에 심취했던 필자의 마음을 울렸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뭉클하다. 지난 5월 ‘케 세라, 세라(Que Sera, Sera)’로 유명한 할리우드 여배우 도리스 데이가 9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는 결혼을 4번 했지만 불운했다. 데이도 장례식을 치르지 말고 묘비도 새기지 말도록 유언을 남겼다. 톨스토이를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 삶에 대한 초연함과 함께 미리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장례문화 바꾼 고 최종현 회장을 기리다

‘장례’ 하면 SK그룹의 총수였던 고 최종현 회장이 떠오른다. 그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장묘문화를 선구적으로 바꾼 계기가 되었다. 좁은 국토를 묘지투성이로 만드는 매장문화와 화장 시설이 부족한 현실을 안타까워했던 그는 자신을 화장하고 좋은 화장 시설을 지어 기부하라고 유언했다. 1998년, 그의 임종 후 한 달 만에 ‘한국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이후 협의회)가 발족됐다. 매장 중심의 장묘문화를 화장 중심으로 개혁해 나가자는 국민운동이 전개되었다. 최종현 회장의 유지에 따라 SK그룹은 500억원의 기금을 투입해 SK장례문화센터 ‘세종시 은하수공원’을 2010년 완공해 세종시에 기증했다. 1년 전 구본무 회장 장례 절차도 그 맥락 속에 있었다. 협의회에 참여했던 구본무 LG 회장은 화장과 함께 친환경 장례 방식인 수목장을 실천했다. 매장 중심의 장묘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평소 뜻에 따른 것이었다. 최종현 회장이 세상을 떠날 때 20% 수준이었던 화장률은 20년 만에 80%를 넘어섰다. 2019년 1월,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7년 전국 화장률은 84.6%다.

장례식장을 호스피스병동으로!

사회 저명인의 부모 장례식장에 가면 조화가 넘쳐 벽에 수많은 리본들이 붙어 있다. 조화는 버려지고 이름이 적힌 리본만 남은 것이다. 낭비를 줄이며 독거노인 등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하고 쌀 소비도 촉진하기 위해 조화 대신 ‘이웃돕기 쌀’로 대신한 적이 있었다. 최근 다녀본 장례식장에선 본 적이 없다. 한때 유행으로 끝났다. 필자도 최근 두 번의 장례를 치르면서도 경황이 없어 그냥 조화를 받았다. 쌀로 대신해달라고 하지 못해 후회되었다. 얼마 전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모친상이 있었다. 조의금도 받지 않고, 조화 대신 근조 기가 많았다고 한다. 조문 행렬이나 술판이 없는 절제된 의식이었다고 한다. 한 가지 내 시선을 끄는 기사가 있었다. 2년 전 출간된 어머니 자서전인 <남의 눈에 꽃이 되어라>라는 책을 조문객들에게 나눠주었다는 기사다. 꼭 자서전은 아니더라도 고인의 사진과 함께 삶의 이야기와 평소 가족들과 주고받은 사랑, 그리고 찾아온 조문객들에게 감사와 축복의 글을 담은 소책자를 나누어주면 어떨까? ‘인생노트’를 제작하는 도서출판 은빛이 만든 조문보(弔問報)가 좋은 예다. 4~8쪽 종이에 한 시대를 헤쳐 온 고인의 인생을 담는다.

2016년 국정감사 때, 서울대병원에 호스피스병동이 없는 것이 지적되었다. 사회적 합의와 만장일치로 통과된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을 앞두고 있고 국가적으로 웰다잉을 위한 시책을 준비하는 마당에 대표적인 국립대병원에 호스피스병동이 없어서야 되겠냐는 것이었다. 국회의 지적에 교육부는 예산을 주면 병동을 만들 것인지 의지를 물었다. 병원 집행부는 공간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필자는 장례식장을 호스피스병동으로 전환하자고 주장했었다. 장례식장은 창경궁이 잘 보이는 곳에 있어서 호스피스병동으로 적합했다. 반대 이유가 있었다. 공공기관경영정보공개시스템인 알리오에서 조사 가능한 7개 국립대병원의 2018년 감사보고서를 분석했다. 서울대병원(분당병원 포함)은 64억4800만원의 수익에 36억6400만원의 이익이 있었다. 이익률은 56.8%였다. 7개 국립대병원은 348억3700만원 수익에 158억8100만원 이익으로, 평균 이익률은 45.6%였다. 집행부는 보장된 수익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장례식장 운영은 병원들의 적자를 메울 수 있는 부대사업 중 하나가 되어버린 것이다.

국립대병원들이 이럴 지경인데, 다른 ‘빅5’를 비롯한 민간병원들은 오죽하겠는가? 세상 어느 나라에 장례식장을 병원들이 운영하고 있는지, 듣도 보도 못한 요지경이다. 전국에 장례식장 1114개가 있다. 대학병원들까지 보탤 이유는 없다. 세계보건기구가 말기환자에게 호스피스케어가 꼭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빅5’를 자랑하는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연세대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중 유일하게 서울성모병원만 호스피스병동이 있다. 지금도 호스피스병동이 부족해 입원을 못한 채 환자들과 가족들은 고통을 받고 있다. 중증질환을 보는 병원이라면 당연히 갖추어야 할 호스피스병동은 외면된 채 장례식장은 성업을 이루고 있다. 2012년 필자는 국민들에게 물었다. “장례식장 대신 가족들을 편하게 해주고 의료진이 돌봐줄 수 있는 시설을 병원/집에서 가까운 곳에 만든다”는 의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필자의 기대보다 상당히 높았다. ‘웰다잉에 대한 대국민 인식 조사’에 따르면, 무려 81.7%가 찬성했다. ‘매우 그렇다’는 의견도 40%였다. 여성, 50대 이상, 고소득, 고학력에서 찬성 비율이 더 높았다. 이쯤 되면 정부나 사회가 나서서 대학병원들이 장례식장 대신에 호스피스병동을 만들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스스로 하지는 않을 테니.

[윤영호의 웰다잉 이야기](6)내가 살아 있을 때 아름답게 이별하고 싶다…생전 장례식에서

미리 하는 장례 준비(사전장례의향서, 생전 장례식)

1년 전 고 김병국씨의 ‘생전 장례식’이 있었다. 당시 85세의 그는 전립선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그는 ‘나의 판타스틱 장례식’이라 쓰인 입간판과 함께 손님을 맞았다. 평소 장례식을 하지 않고 화장되기를 원했다. 지인들에게 “죽은 다음 장례는 아무 의미 없습니다. 임종 전 지인과 함께 이별 인사를 나누고 싶습니다. 검은 옷 대신 밝고 예쁜 옷을 입고 함께 춤추고 노래 부릅시다”라고 적힌 자신의 부고장을 보냈다. 그는 양희은의 ‘아침이슬’과 산이슬의 ‘이사 가던 날’을 불렀다. 참석자들은 아픈 이별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 아름답게 이별하며 죽음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전직 기업인 안자키의 ‘생전 장례식’이 먼저 있었다. 2017년 11월, 당시 80세인 그는 암 진단을 받았지만 연명의료를 포기하고 신문에 “연명의료를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건강한 상태에서 모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라는 광고를 내 생전 장례식을 알렸다. 호텔을 섭외하고 고향인 도쿠시마의 전통춤 공연 등을 기획하는 등 자신의 장례식을 직접 준비했다. 친구, 동문, 전 직장 동료 등 1000여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고맙다’고 말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참석자들에게 ‘안자키’의 인간다움의 마지막 모습을 남겨주었다. 이 생전 장례식은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희호 여사도 생전에 작별 인사
“죽고 나서 장례식을 하면 뭐하나”
평소 입던 옷 입고 지인들과 대화

함석헌의 ‘그 사람을 가졌는가?’
세상 떠나는 날, 꼭 읽고 싶은 시
그리고 조용필 ‘바람의 노래’도

얼마 전 떠난 이희호 여사도 생전에 이별을 희망했다.

“죽고 나서 장례 지내면 뭐하나, 살아 있을 때 작별인사 해야지” 하며 검은 옷 대신 평소 입던 옷을 입고 지인들과 노래하고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는 생전에 유언도 남겼다. “우리 국민들께서 남편 김대중 대통령과 저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다.”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 국민을 위해,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

2018년 9월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370명을 대상으로 ‘생전 장례식’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직장인 10명 중 7명이 ‘생전 장례식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들은 “죽기 전 슬프지 않은 분위기에서 많은 사람과 작별하고 싶어” 했다. 반면 10명 중 3명은 ‘생전 장례식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들은 아직 생전 장례식/살아 있는 장례식이라는 것이 익숙하지 않고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오히려 상처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또 4명 중 3명은 ‘지인으로부터 생전 장례식 초대를 받는다면 참석하겠다’고 답했다.

필자도 세상을 떠나는 날이 머지않았다면, 김병국씨·안자키·이희호 여사처럼 의식이 있을 때 생전 장례식을 하고 싶다. ‘내가 그대가 되었고, 나에게 그대가 되어준’ 사람들을 초대해 고 함석헌 선생의 ‘그 사람을 가졌는가?’ 시를 읽어주겠다.

그 사람을 가졌는가?

1985년 4월9일, 4·19 기념제의 일환으로 ‘부활과 4월혁명’이라는 주제로 함석헌 선생의 강연회가 서울대 아크로폴리스에서 있었다. 그는 서울대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강연일 것 같다며 현실의 상황에 대해 개탄하고 자신이 못다 한 꿈을 우리들이 이어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때 친구가 찍어준 그의 사진 한 장을 아직 간직하고 있다.

종이에 적어 손에 쥐어온 ‘그 사람을 가졌는가?’를 들려주었다. 세상 떠나는 날에 꼭 읽고 싶은 시가 되었다.

만 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마음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방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그는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너희가 있으니 미소를 지으며 떠날 수 있다고 말하며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어달라고 당부했다. 1989년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생전 모습이 또렷이 기억된다. 톨스토이의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나온 천사처럼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의 내부에는 무엇이 있는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깨달음을 생전 장례식에서 나누고 싶다. 생전 조의금도 거부하지 않겠다. 필자의 유언에 따라 호스피스와 웰다잉 문화를 위한 기금으로 쓰일 것이기에. 헤어지는 마지막 시간에는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윤영호 교수는

[윤영호의 웰다잉 이야기](6)내가 살아 있을 때 아름답게 이별하고 싶다…생전 장례식에서

중1 때 누님이 위암으로 돌아가시자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고, 서울대 의대를 졸업했다. 본과 4학년 때 자원봉사를 하면서 호스피스를 알게 되어 호스피스를 전공으로 택해 가정의학과 수련을 받고 전문의를 마쳤다. 2000년 국립암센터 설립 초기부터 참여해 삶의질향상연구과장, 기획조정실장 등을 역임했다. 2011년 서울대 의대 교수로 옮겼으며 건강사회정책실장, 연구부학장,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을 역임했다. 최근 설립된 웰다잉시민운동 기획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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