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웰 다잉

  • 백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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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05   |  발행일 2019-10-05 제23면   |  수정 2019-10-05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도 나는 계속 나아갈 거야. 설령 내가 죽어 가더라도 내가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신경외과 전문의를 앞둔 36세 레지던트의 생애 마지막 2년을 담은 엔딩 노트로 2016년 미국은 물론 세계적 베스트셀러에 단숨에 오른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될 때’의 일부분이다.

얼마 전부터 웰 리빙(Well Living·잘 살기)보다 웰 다잉(Well Dying·잘 죽기)과 관련된 서적이 더 잘 팔린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웰 다잉 서적이 불티나게 팔리는 것은 삶의 마지막을 편안하고 아름답게 마치려는 일종의 웰 다잉 신드롬으로 분석하고 있다. 지구상에 영원히 존재하는 생명체는 없는 만큼 웰 다잉을 찾으려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공통 분모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웰 다잉 신드롬은 고령사회가 우리보다 훨씬 앞선 일본에서 먼저 불기 시작했다. 일본은 인구의 23.5%가 노인인 초고령사회에 접어들자 임종을 대비하는 슈카츠(임종 준비 활동)가 실버산업으로 크게 성장하는 추세다. 2025년엔 전체 인구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사회가 예고된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연명의료 유보 또는 중단을 결정한 환자는 지난 6월말 기준 5만3천900명이었다. 지난 2월말 3만6천여명에서 불과 4개월 만에 1만8천명가량 늘어났다. 6월말까지 사전연명 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사람도 25만6천25명으로 2월 11만명에 비해 2배 이상 급증했다.

지난해 1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죽음의 질 제고를 통한 노년기 존엄성 확보 방안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국민 4명 중 3명이 연명의료를 반대했다. 중노년층이 생각하는 좋은 죽음은 스스로 죽음의 시기를 결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준비할 수 있어야 좋은 죽음이라는 것이다. ‘멀리 있는 죽음을 보면 가까이 있는 삶이 보인다’는 어느 노학자의 말처럼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웰 다잉은 이제 필수가 됐다. 수명 100세 시대에 벌써부터 무슨 웰 다잉이냐고도 할 수 있으나 폴 칼라니티와 같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무거운 질문에 답을 스스로 내놔야 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존중 받으면서 삶을 마감할 수 있는 웰 다잉을 찾아보자.

백종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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