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죽음도 삶의 과정…금기시 말고 터놓고 얘기하며 준비해야죠”읽음

윤영호 교수

연극인 손숙과 웰다잉 대화

연극인 손숙씨(왼쪽에서 두번째)가 웰다잉시민운동이 지난 4월25일 오후 서울 광화문 KT스퀘어 드림홀에서 개최한 시니어 토크콘서트 ‘나이 들어 마주하는 나의 삶과 죽음’에 참석해 화가 임옥상씨(왼쪽), 소설가 김훈씨(왼쪽에서 세번째), KBS 아나운서 정용실씨(오른쪽)와 토론을 하다 웃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연극인 손숙씨(왼쪽에서 두번째)가 웰다잉시민운동이 지난 4월25일 오후 서울 광화문 KT스퀘어 드림홀에서 개최한 시니어 토크콘서트 ‘나이 들어 마주하는 나의 삶과 죽음’에 참석해 화가 임옥상씨(왼쪽), 소설가 김훈씨(왼쪽에서 세번째), KBS 아나운서 정용실씨(오른쪽)와 토론을 하다 웃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웰다잉 문제에 관한 한 연극인 손숙 선생(예술의전당 이사장)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분이라고 할 수 있다. 2015년 손숙 선생은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전 환경부 장관)과 함께 호스피스국민본부를 만들어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약칭 ‘연명의료결정법’)이 통과될 때까지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필자는 당시 실무총괄을 맡았던 인연으로 손숙 선생을 알게 됐다. 손숙 선생은 1944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으며 고려대 사학과를 중퇴했다. 1964년 연극 <상복을 입은 엘렉트라>를 통해 연기자로 데뷔했다. 최근 영화 <귀향>에 출연했으며,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차가운 현실을 온몸으로 버티는 거친 여자인 이지안(아이유)의 청각장애를 가진 할머니 봉애 역할을 맡아 죽음을 맞이하는 연기를 했다. 임종을 앞둔 환자에 대한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연명의료결정법, 이른바 ‘웰다잉법’이 시행됐지만 웰다잉 문화가 활성화되지 못한 현실에서 손숙 선생을 만나 웰다잉에 대한 사회적 담론을 풀어나가고자 했다.

■ 죽음에 대한 경험

품위있게 죽음 맞는 친구 보며
추하지 않게 미리 준비할 필요
욕심 버리고 정리하고 싶어져

윤영호(이하 윤) = 가까이 지내다 돌아가신 분 중 특별히 기억나는 분이 계십니까.

손숙(이하 손) =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제일 친한 친구가 있었어요. 췌장암으로 1년 살았어요.

윤 = 왜 부모님이 아니신지요.

손 = 어머님은 돌아가신 지 오래여서. 옛날에 돌아가셨지. 지금 내 나이가 몇인데….

윤 = 그 친구분의 마지막 임종 때는 어떠한 모습이었습니까?

손 = 굉장히 좋았어요.

윤 = 췌장암이면 굉장히 아프셨을 텐데, 어떻게 좋았다고 하시는지.

손 = 그 친구는 암 선고를 받고 수술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수술은 안 했어요. 1년 동안 정말 차곡차곡 준비를 잘했어요.

윤 = 어떤 준비를 하셨는지요.

손 = 가족에 대한 것, 남편에 대한 것들. 남편을 준비하도록 훈련시켰어요. 대단했어요. 항암치료는 받았는데, 울거나 힘들어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가끔 가면 옛날이야기도 하고, 움직일 때는 여기저기 다녔고, 죽기 직전에도 목사님을 불러서 이야기를 잘 듣곤 했어요.

윤 = 그런 모습이라면 평소에도 생각을 많이 하고 준비하지 않았을까요.

손 = 나눌 것 다 나누고, 그리고 아주 품위 있게 마무리를 했어요.

윤 = 그분의 모습이 상상이 갑니다.

손 = 그래서 늘 가슴에 남아 있어요. 제 마지막 소원이 최소한의 품위는 갖고 죽는 것인데, 그 친구가 그것을 보여줬어요.

윤 = 그 모습을 실제로 보시니 ‘아! 나도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기지 않으셨습니까.

손 = 예, 그랬어요. 1년을 지켜봤는데,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어요.

윤 = 마지막에 고통스럽고 너무 힘들어 두려웠을 텐데요.

손 = 마지막에 살고 싶어 하고 그럴 수도 있는데, 담담하게 잘 받아들이고 가족도 잘 대비를 했어요.

윤 = 그런 분들은 좀 색다른 분들이 아니신가요.

손 = 재미있는 일이 있었어요. 그 친구가 죽고 나서 입원했던 병원이 아니라 다른 병원으로 장례식장을 옮겼기에 그 며느리에게 물었더니, 그 장례식장이 주차장도 좋고 음식도 더 맛있다며 그쪽으로 하라고 유언을 남겼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그 친구는 정말 오지랖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윤 = 어떻게 그렇게 준비하실 수 있었을까요? 사회에 그런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교육이나 문화가 있는 것도 아닌데.

손 = 평소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고 누구나 가는 길인데, 추하지 않게 가는 것이 무엇인가를 늘 생각해놓았기 때문에 가능했을 거예요. 이야기도 많이 하고, 늘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윤 = 선생님도 혹시 죽음의 고비를 넘겨본 적이 있으신가요.

손 = 그런 경험은 없는데 생각은 늘 하고 있습니다. 많이 내려놓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갈 때 아이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연연하거나 추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죽음과 삶에 대한 생각

윤 = 선생님은 죽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손 = 돌아가는 것, 아닌가요?

윤 = 뭔가 계속 이어진다는 뜻입니까.

손 = 그럴 수도 있겠죠? 뭔가 이어진 것이라는 생각. 윤회설이나 내세가 있다고 믿지는 않지만. 더 아파지고도 그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윤 = 돌아간다는 그것이 영생이 아니겠습니까? 흙으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손 = 자연에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천당과 지옥이 있다기보다는 이 세상에서 잘 살라고 훈육을 시키기 위해서 필요했는지는 모르죠.

윤 =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손 = 더불어 살고 나누며 사는 것, 욕심도 내려놓고 사는 것이라 생각해요. 10년 전부터 그렇게 생각했어요. 욕심을 갖는다고 그렇게 되지 않아요. 주변에 보면 특히 나이든 분들이 내려놓지 못하고 심술, 욕심, 불만, 불평이 있으면 정말 잘 늙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차피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것인데, 그것을 붙들고 있으면 본인도 힘들고 주변도 힘들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제가 다 내려놓았느냐, 그것은 아니지만 노력하면서 삽니다. 오늘도 내일도 반성하고, 그런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윤 = 아름다운 마무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손 = 다 내려놓고 갔으면 좋겠어요. 법정 스님처럼은 되지 못해도. 누웠다가도 일어나 벽장 문을 열어요. 그리고 반성합니다. 내일은 저것을 버릴까? 저것을 없앨까? 미리미리 정리하고 싶어요. 솎아내서 가볍게 하고 싶어요. 주렁주렁 달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그것이 굉장히 불편하더라고요. 그냥 흔적도 별로 남기지 않고 싶다, 그러면 정말 홀가분할 것 같아요.

윤 = 죽고 난 후 어떠한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으십니까.

손 = ‘폐 안 끼치고 그냥 깔끔하고 깨끗하게 살다 갔다’, 그 정도면 좋지 않을까요? 지금 무슨 테레사 수녀님이 되겠습니까? 질질거리지 않고. 그런데 그것이 마음대로 될까 모르겠어요. 저는 유언장에 아프면 윤 교수님에게 연락하라고 할 거예요.

윤 = 하하. 제가 제일 잘해드릴 수 있는 게 통증 조절이니, 안 아프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손 = 정말 아픈 것은 싫어요.

윤 = 제가 인터뷰를 했으니까 지금 이야기하신 “깨끗하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잘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손 = 감사합니다. 더 이상 바라지 않아요.

윤 = 그래도 무형적인 유산으로 남기신다면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습니까?

손 = 그냥 ‘좋은 배우였다’ 그 정도? 현직에 있으면서 떠났으면 좋겠지만 그것도 욕심일지 모르겠어요.

윤 = 그것은 욕심보다는 의무가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손 = 그렇죠. 나는 그냥 순리대로 살다가 후배들한테 좋은 선배였다 정도.

윤 = 그러면 그 삶이 후배들의 삶에 배여서 남아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손 = 그렇죠. 그런 정신이 있었으면 합니다. 그것도 욕심이 아닐까, 요즘 반성하면서 살아요.

■ 바람직한 죽음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

바람직한 죽음 관련 생각 나누기
자연스럽게 대화의 문화 생길 것
연명의료 등 부모·자식 대화를

윤 =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죽음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손 = 이런 대화가 많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죽음에 대한 대화를 너무 금기시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몇 살 때 죽고 싶다고 하면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못하게 해요.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러면서 막 “오래 사셔야지요”라고만 말해요. 그런데 그렇게 오래 사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윤 = 제가 아는 남자 탤런트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드렸더니, 굉장히 거북해하시더군요. 그래서 “20년 더 산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말씀드렸더니 그것은 너무 끔찍하다고 생각하시더라고요. 이어서 “몇 년 더 사시는 것이 좋겠습니까?”라고 여쭈었더니 그때는 마음의 여유가 좀 생기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냥 물어보면 “나 죽으란 이야기냐?”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차분하게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대화를 하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손 =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을 예의라 생각하는데, 그것은 아니라고 봐요. 죽음도 인간 삶의 한 과정이잖아요. 누구나 겪는.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문화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거죠.

윤 = 그래서 연명의료결정법에 10월 둘째 주 토요일을 ‘호스피스의날’로 정해 삶과 죽음의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하는 날로 만든 것입니다. 캠페인도 하고, 죽음에 대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자는 뜻으로.

손 = 그것은 정말 중요해요. 자연스럽게 서로 이야기가 된다면, 훨씬 노후도 좋아지고 죽음도 자연스러워지지 않을까요? 부모와 자식 간에 그런 대화를 해놓지 않으면 서로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어요. 우리 어머니가 일흔아홉 살에 돌아가셨어요. 요즘 수명이 늘어났어도 85세 전에 떠났으면 좋겠어요. 그 이상은 정말 살고 싶지 않아요.

윤 = 그런데 세상이, 병원이 살려 놓거든요.

손 = 그것이 싫다는 것이지요.

윤 = 85세 넘어서도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다면 그것도 또 하나의 삶이 아닐까요?

손 = 그것도 어쩔 수 없겠지만. 딱 좋은 나이가 아닐까? 저는 연명의료는 안 하고 싶어요. 보약, 홍삼이나 녹용을 먹거나 하는 것은 안 할 거예요. 저의 어머님이 돌아가실 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아, 저 연세가 참 좋다. 왜냐하면 약간 자식들이 아쉬워하기도 하고.

윤 = 저의 어머님이 3년 전 만 83세로 세상을 떠나셨는데, 아쉬움은 전화를 드리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출근하다가 전화를 하려 하는데 어머님이 안 계신 거죠. 삶 속에서 잊어버리고 있다가 문득 생각 나서. 대화의 기회가 없어져버린 것이죠. 제일 아쉬웠습니다.

손 = 그렇지만 83세면 참 좋은 나이 같아요.

윤 = 제가 그래도 의사인데. 10년은 더 살려드리겠다고 했는데, 그 약속을 지켜드리지 못하고 떠나 보내드렸습니다.

손 = 83세만 해도 남 도움 없이 살 수 있는데, 아무리 건강하다 해도 90세가 되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해서 그렇게까지는 더 살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까지는 안 살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어요.

윤 = 그런 상황일 때는 가족이 다 돌보기가 힘들 거예요. 내가 시간적 여유가 있고 육체적으로 감당이 가능할 때는 가족 대신 돌봐주고, 내가 힘들 때는 우리 부모님을 다른 사람들이 돌봐주는 돌봄 품앗이와 같은 제도가 우리 사회에 필요합니다. 지역단위로 묶어서 서로 돌봐주는 문화로 만들어 보려 합니다.

손 = 돌봄 품앗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윤 = 옛날에는 농사일이나 결혼식이나 장례식 때 품앗이를 했다면 요즘은 돈만 내면 다 되니깐, 정으로 주는 품앗이보다는 의무감으로 하는 시대로 바뀌면서 사람들 간의 정이 많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손 = 좋은 문화는 없어져 버리고 이제 다 자본 논리로 가니까 좋은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어요.

윤 = “옛것이 좋은 것이여”라는 말처럼 자연식이라면서 옛날 먹던 것들이 건강에 좋은 것이라 다시 찾듯이, ‘상부상조’와 같이 서로 돕고 살았던 것도 좋은 것으로 복원시키는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손 = 저는 독거노인이거든요. 어떤 때는 그런 걱정이 들어요. 자다가 급한 상황이 생기면 어딘가 직접 연락할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윤 = 우리는 그런 시스템이 안돼 있는데, 통신이나 휴대폰 등 어떤 시스템이 있어서 노인분이 일정 시간 이상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든지 할 경우 자동으로 벨이 울리거나 문자로 확인한다든지 하는 것들이 필요합니다.

손 = 일본에는 아침마다 문안전화를 하는 시스템이 돼 있는 것 같은데, 그런 것들이 활성화되었으면 좋겠어요.

윤 = 그렇습니다.

손 = 제가 얼마 전에 노인분들만 사시는 곳에 간 적이 있어요. 200여명이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계단을 내려오시는데, 이상한 나라에 온 느낌이었어요. 정말 충격을 받았어요. 저도 조금만 더 있으면 그런 노인이거든요. 저는 그렇게는 안 살았으면 해요.

윤 = 삭막하죠. 자원봉사자나 도와주는 분들이 없었습니까.

손 = 실버타운이니까 있어요. 시설도 잘돼 있었는데, 식사하기 위해 200여명이 앉아 있는데,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이렇게 모아놓아야 하나. 너무 비인간적인 것 같아요.

윤 = 그래서 미국에서도 대형보다는 소규모로 인간적인 단위의 공동시설로 하고 있습니다.

손 = 스웨덴에서는 10명 정도의 공동하우스라는 형태로 운영하고 있어요. 부락 같은 데서 식당을 같이 이용하고, 청소도 해주는 분이 있고, 서로 식단도 정하고, 커뮤니티 활동도 하고.

윤 = 그런 시설이 먼 산속보다는 집 근처에 가깝게 있다면 자식들도 자주 들러 보고 퇴근길에도 들를 수 있죠. 먼 곳에 계시면 일상생활이 아니라 무슨 행사 하듯이 찾아가는 것이 되기 때문에 좋지 않아 보입니다. 다만 소득에 상관없이 이용할 수 있어야죠.

솔직한 웰다잉 이야기 주고받아
삶의 기록 남기고 경험 공유토록
정부와 기업이 지원해주길 기대

손숙 선생은 웰다잉을 위한 병원의 역할과 호스피스 등에 대해서도 좋은 의견을 제시했고, 국민의 웰다잉을 위해 최선을 다해 돕겠다는 다짐도 했다. 인간은 대화와 만남을 통해 영향을 주고받는다.

손숙 선생의 웰다잉 이야기는 우리의 삶 속에 배여서 살아 움직인다. 국민 누구나 솔직한 웰다잉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삶의 기록을 남기고 경험을 공유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이 이를 지원해주기를 기대한다.

▶ 윤영호 교수는

[윤영호의 웰다잉 이야기](5)“죽음도 삶의 과정…금기시 말고 터놓고 얘기하며 준비해야죠”

중1 때 누님이 위암으로 돌아가시자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고, 서울대 의대를 졸업했다. 본과 4학년 때 자원봉사를 하면서 호스피스를 알게 되어 호스피스를 전공으로 택해 가정의학과 수련을 받고 전문의를 마쳤다. 2000년 국립암센터 설립 초기부터 참여해 삶의질향상연구과장, 기획조정실장 등을 역임했다. 2011년 서울대 의대 교수로 옮겼으며 건강사회정책실장, 연구부학장,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을 역임했다. 최근 설립된 웰다잉시민운동 기획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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