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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땅에 있는 남의 묘, 알아서 해결하라고요? [뉴스 투데이]

입력 : 2019-05-28 18:37:30 수정 : 2019-05-28 22:3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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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묘기지권’ 갈등 빈번한데… 당국은 뒷짐 / 대법 판례로 인정되는 관습법 / 허락 없이 묘 써도 20년 지나면 / 토지주라도 함부로 철거 못 해 / ‘묘지 신고제’ 사실상 유명무실 / 묘 있는지 파악조차 쉽지 않아 / “신고 일원화 등 제도개선 필요”

‘땅 주인이 우선인가, 묘지 주인이 먼저인가.’

 

서울 서초구에 사는 40대 이모씨는 지난 3월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본인 소유의 땅을 13억원에 팔기로 했는데 계약 과정에서 묘지 5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다. 땅을 사기로 한 사람은 “묘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땅을 사지 않겠다”고 했다. 이씨는 묘주(墓主) 3명을 만나 협상을 시도했으나 이들은 무덤 5구를 이전하는 데 7억원을 요구했다. 이씨는 28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7억원은 너무한 것 아니냐”며 “땅이 팔릴 줄 알고 2억3000만원을 들여 집 인테리어 공사를 했다가 이를 지급하지 못해 집이 경매에 넘어갔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2016년 9월 전남의 한 교외지역에 2810㎡(약 850평) 규모의 땅을 산 윤모(41)씨도 비슷한 처지다. 땅을 구매한 지 2년이 지난 올해 초 갑자기 마을 주민 1명이 해당 토지의 99㎡(30평) 정도 되는 부분이 본인 소유의 묘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해당 주민은 묘 이전 비용으로 600만원을 요구했다.

 

‘분묘기지권’을 둘러싼 땅 주인과 묘주 간 갈등이 빚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아 이를 해결할 제도적 장치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분묘기지권은 타인의 토지에 분묘를 설치했더라도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해당 묘 주인에게 해당 묘지와 주변 일정 면적의 땅에 대해 사용권을 인정해주는 것을 말한다.

 

분묘기지권은 대법원 판례에 따라 인정되는 관습법이다. △땅 소유자의 허락을 받은 경우 △자신의 땅에 묘지를 설치한 후 타인에게 매매하며 묘지 이전에 대해 약정하지 않은 경우 △토지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해당 땅에 20년간 평온·공연하게 점유한 경우 등이 인정된다.

 

이 가운데 문제가 되는 건 토지 주인 허락 없이 20년 이상 점유한 세 번째 경우다. 2001년부터 시행된 장사법은 분묘기지권 취득시효일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2001년 이전에 설치된 분묘에 대해서는 여전히 분묘기지권이 인정되면서 오래된 분묘에 대한 분묘기지권 논쟁은 여전한 상태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실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7년 1월 분묘기지권을 관습법으로 인정하면서 “장묘문화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에 일부 변화가 생겼더라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 분묘기지권의 기초가 된 매장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장사법 시행일 이전에 설치된 분묘에 관하여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묘지를 소유하고 있는 측도 곤란하긴 마찬가지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16년 거창 유씨 일가와 부산광역시·부산도시공사 간 조상묘 분쟁 중재에 나섰다. 거창 유씨 일가는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미음지구 내에 있는 조상묘 7기를 이장해달라는 요구에 반발해 권익위에 민원을 접수했다. 당시 부산시는 분묘 존치가 불가하다는 입장이었다. 권익위는 거창 유씨 일가가 분묘기지권을 포기하는 대신 반드시 분묘 이전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분묘 존치를 허용하라는 중재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묘지 등록 신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도 토지 소유주와 묘주 간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땅을 구매하는 사람이 직접 토지 전체를 둘러보거나 묘지 유무를 알아보지 않는 한 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2011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사설묘지 설치 신고 및 허가 실적이 전혀 없는 기초 지자체가 42.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전에는 매장 풍습이 주를 이루면서 이 같은 관습법에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으나 최근 장례방식이 급속도로 바뀌면서 분묘기지권이 시대와 맞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분묘기지권으로 인한 갈등을 줄이기 위해 사망신고와 매장신고를 일원화하는 등 제도개선을 촉구했다. 손경찬 연세대 법학연구원 교수는 “묘지설치 신고와 사망신고를 연계하는 방안이 분묘기지권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했다. 한국장례문화진흥원도 2014년 발간한 보고서에서 “정책 집행의 효율화를 위해서 사망신고서에 매장관련 사항을 기재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사망신고와 매장신고의 일원화를 주장했다.

 

김철재 대전보건대 교수(장례지도학)는 “묘 이장이 개인 간의 거래라는 생각이 강하다 보니 정부에서도 별다른 해결책을 갖기가 어렵다”며 “비용도 덜 들고 관리하기 쉬운 자연장 등을 정부가 홍보하는 식으로 사회적 의식을 바꿔나간다면 분묘기지권 갈등도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남혜정·이희진 기자 hjn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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